고창 용오정사에서 만난 안개 속 고요와 단정한 정사의 숨결
이른 아침, 고창 무장면의 안개 낀 들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길 끝에 연못과 함께 조용히 서 있는 기와지붕이 눈에 들어왔고, 그곳이 바로 용오정사였습니다. 주변은 산자락이 낮게 드리워져 있고, 개울물이 부드럽게 흐르며 맑은 물소리를 냈습니다. 돌담 너머로 보이는 정사는 크지 않았지만, 단정한 기둥과 나무 결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문을 들어서자 흙냄새와 나무 향이 뒤섞여 고요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면 처마끝 풍경이 은은하게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냈습니다. 오래된 공간의 단아한 품격이 그대로 전해졌고, 그 속에서 마음이 자연스레 가라앉았습니다.
1. 무장면 골짜기 끝의 고요한 자리
용오정사는 고창군 무장면사무소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 완만한 산길을 따라 들어간 마을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따르면 ‘용오정사 입구’ 표지석이 보이고, 좁은 시멘트길을 200m 정도 더 들어가면 돌담이 시작됩니다. 입구에는 작은 주차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차량 3대 정도 세울 수 있습니다. 주말에도 방문객이 많지 않아 조용히 둘러보기 좋았고, 길을 따라 걷는 동안 산새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주변에는 논과 대숲이 어우러져 있고, 이른 아침이면 안개가 낮게 깔려 정사 지붕이 흐릿하게 보이는 풍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정사까지 이어지는 길은 평탄해 걷기에 무리가 없었습니다.
2. 단정한 구조 속에 깃든 고요함
정사는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 규모의 맞배지붕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바닥은 낮은 돌기단 위에 놓여 있고, 네 면이 트여 있어 바람이 자유롭게 드나듭니다. 기둥은 굵고 단단하며, 나무의 결이 그대로 드러나 자연스러운 질감이 느껴졌습니다. 지붕의 선은 부드럽게 흐르고, 처마 밑에는 희미한 단청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마루에 앉으면 앞쪽의 연못과 숲이 한눈에 들어왔고, 물 위로 햇빛이 번져 반사되었습니다. 실내에는 불단과 불상이 단정히 모셔져 있었으며, 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습니다. 공간 전체가 정갈하고 절제되어 있어, 발소리마저도 조심스러워지는 분위기였습니다.
3. 이름에 담긴 뜻과 역사적 배경
용오정사(龍悟精舍)는 ‘용이 깨달음을 얻은 집’이라는 뜻으로, 불법을 수행하던 선승들이 머물던 소규모 수행처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 후기 지역 유학자이자 불교 신앙을 겸했던 인물들이 명상과 학문을 병행하던 곳이라 전해집니다. 대웅전 대신 단촐한 불단만 두고, 선방 중심의 구조로 지어져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안내판에는 용오정사의 창건 연도와 보수 기록이 정리되어 있었고, 최근에 지붕 일부가 복원된 흔적이 보였습니다. 오래된 목재와 새로 교체된 부재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세월의 흐름을 이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행과 사색의 공간’이라는 글귀가 정사의 의미를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4.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진 풍경
정사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속에는 붉은 잉어가 몇 마리 헤엄치고 있었고, 연못 가장자리에는 부드러운 수초가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연못 옆에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마주 서 있어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웠습니다. 주변의 산 능선이 멀리 이어져 있고, 오후 햇살이 기와 위로 비칠 때마다 색이 은은하게 바뀌었습니다. 새들이 처마 끝에 앉아 울음을 터뜨리면 그 소리가 연못 위로 퍼져 나갔습니다. 바람이 잦은 날에는 정사 앞 돌계단 위로 낙엽이 천천히 쌓이며 계절의 변화를 전했습니다. 인공적인 꾸밈이 거의 없는 대신, 자연과 건물이 하나로 이어진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습니다.
5. 인근 문화유산과 함께하는 탐방 코스
용오정사를 둘러본 뒤에는 차로 15분 거리의 ‘무장향교’와 ‘무장현 관아’를 함께 방문하면 좋습니다. 조선 시대 행정과 교육의 중심지였던 무장면 일대를 연결해보면 지역의 역사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이후 ‘고창읍성’으로 이동해 성곽을 따라 산책을 즐기거나, 점심은 무장시장 인근 ‘고창국밥집’에서 한 끼를 즐길 수 있습니다. 오후에는 ‘선운사’로 향해 불교문화의 깊이를 더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용오정사에서 선운사로 이어지는 길은 고창의 산과 들이 어우러진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였습니다. 하루 일정으로 고요함과 역사, 자연을 모두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6. 방문 팁과 현장 유의사항
용오정사는 상시 개방되어 있지만, 새벽이나 저녁 시간대에는 조명이 없어 어둡습니다. 비가 온 다음 날에는 길가의 흙길이 질척이므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여름철에는 모기와 벌이 많아 긴 옷차림이 좋습니다. 내부는 수행 공간으로 사용될 때가 있으므로, 정숙을 유지해야 합니다.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불단 내부는 삼가야 합니다. 오전 9시경이나 해 질 무렵의 부드러운 햇살이 가장 아름답게 건물을 비춥니다. 조용히 앉아 연못의 물결과 나무의 그림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마무리
용오정사는 화려함보다 고요함이 먼저 다가오는 곳이었습니다. 나무의 향, 물의 소리, 그리고 바람의 흐름이 어우러져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세월이 만든 질감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안에 담긴 절제된 아름다움이 인상 깊었습니다. 잠시 머물렀지만, 일상의 소음이 사라지고 생각이 맑아지는 경험이었습니다. 다시 찾는다면 봄비가 갠 다음 날, 연못의 물결이 고요히 일렁이는 시간에 천천히 둘러보고 싶습니다. 고창의 자연과 정신이 함께 살아 있는, 조용하고 품격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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